COLNAGO
LEGEND

밀라노 캄비아고의
작은 공방에서
 시작된 거대한 역사

1950년

에르네스토 코나고(Ernesto Conalgo)는 코파 칼디롤라에서 우승하였지만, 훈련 도중 사고를 당하였습니다. 이후 자전거 정비사로 사업을 시작했고 나중에는 프레임 제작자가 되었습니다.

1954년

콜나고의 창립자 에르네스토 콜나고의 기업가 정신은 이탈리아 캄비아고(Cambiago)의 가리발디 10번지 작은 공방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55년

훈련 중 만난 챔피언 피오렌초 마니의 자전거 문제를 해결해준 에르네스토 콜나고는 그의 실력을 인정받아 지로 디탈리아 보조 메카닉으로 참가하게 됩니다. 마니는 결국 지로 디탈리아에서 핑크 저지를 입는 데 성공했습니다.

1956년

콜나고는 자전거 포크 제작 방식에 혁신을 일으키며 ‘냉간 굽힘 기술’을 도입했습니다. 이 시기, 많은 프로 선수들이 공식 스폰서와 무관하게 콜나고 공장을 찾아 맞춤 프레임을 의뢰했고, 그것은 다른 브랜드 도색으로 리브랜딩되어 경기에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1962년

밀라노–산레모 레이스를 준비하던 에디먹스는 믿을 수 있는 고성능 휠을 원했고, 에르네스토 콜나고가 이를 완벽히 제작해냈습니다. 에디먹스는 그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이후 몰테니 팀과 콜나고의 협업은 역사상 가장 많은 승리를 거둔 전설적인 시대를 열었습니다.

1966년

16세의 조니 모타를 처음 본 콜나고는 그의 재능을 확신하고 자전거를 지원하며 성장에 힘을 보탰습니다. 그 결과 모타는 1964년 롬바르디 투어 우승, 1965년 투르 드 프랑스 3위, 1966년 지로 디탈리아 우승을 차지하며 콜나고의 첫 전설적인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1972년

에디먹스의 '1시간 기록' 달성을 위해 제작된 자전거는 강철 프레임임에도 불구하고 무게가 5.75kg에 불과했으며, 자전거 역사상 가장 전설적인 모델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이로써 에르네스토 콜나고는 정비사를 넘어 세계적인 자전거 제작자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1974년

콜나고는 이탈리아의 프로 팀 SCIC(에이스는 G.B. 바론첼리)를 공식 후원하며 본격적인 프로 레이싱 무대에 데뷔했습니다. SCIC팀은 가구회사의 메인스폰을 받던 팀으로 에르네스토 코나고의 거의 10년 동안 이 팀의 후원을 유지한다.

1980년

기술 혁신가이자 통찰력 있는 기업가였던 콜나고는 소련과의 기술·상업 협력을 통해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서 100km 단체 타임트라이얼과 도로 경기 금메달을 이끌어냈습니다. 이는 브랜드 이미지와 성과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981년

프라하 세계선수권 결승에서 이탈리아의 베페 사로니는 마지막 400미터에서 과감한 스프린트를 펼쳤지만, 벨기에의 메르텐스가 극적인 역전으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시상대 1, 2위를 차지한 선수 모두 콜나고 자전거를 탔고, 그날 두 대의 콜나고가 세계 정상에 올랐습니다.

1982년

콜나고 에르네스토 콜나고는 델 토노 가문의 글로벌 팀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그해 영국 굿우드에서 주세페 사로니가 세계선수권 우승을 차지하며 레인보우 저지를 입었습니다. 콜나고는 2년 연속 세계 챔피언을 배출했습니다.

1985년

네덜란드의 요프 요테멜크는 39세의 나이에 세계선수권 우승을 차지하며 레인보우 저지를 입었습니다. 투르 드 프랑스(1980), 부엘타, 플레슈 왈롱(1979), 암스텔 골드 레이스, 파리–투르, 파리–니스, 티레노–아드리아티코 등 수많은 레이스에서 콜나고의 역사에 전설을 더했습니다.

1986년

콜나고와 페라리는 기술 혁신과 품질에 대한 공통된 철학을 바탕으로 협업을 시작했습니다. 에르네스토 콜나고와 엔초 페라리, 그리고 사위 브람빌라, 챔피언 사로니까지 함께한 이 만남은 사이클링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1987년

콜나고는 세계 최초로 스트레이트 형태의 프레시사(Frecisa) 포크를 개발하여 진동 흡수와 주행 안정성을 크게 향상시켰습니다. 블레이드와 피벗까지 모두 카본 파이버로 제작된 다양한 버전으로 발전했습니다.

1994년

스위스의 토니 로미거는 프랑스 보르도 실내 벨로드롬에서 53.832km를 달려 1시간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며칠 후 다시 한 번 도전해 55.291km로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특수 설계된 스틸 타임트라이얼 바이크의 위대한 성과였습니다.

1995년

프랑코 발레리니는 1995년 파리–루베 레이스에서 콜나고의 전설적인 C40을 타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메이저 대회에서 카본 프레임이 처음으로 승리한 순간입니다. 카본 프레임과 프레시사 포크는 펠로톤에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1998년

UCI 랭킹 상위 3개 팀인 마페이, 라보뱅크, 카시노–AG2R 모두 콜나고 자전거를 사용했습니다. 지로 디탈리아 2연승(1995, 1996), 1시간 기록 경신, 세계선수권 우승(1995, 1996, 1998, 1999, 2001) 등 최고의 성과를 이뤄냈습니다.

2001년

스페인의 오스카 프레이레는 콜나고 자전거를 타고 리스본 세계선수권에서 불과 몇 센티미터 차이로 같은 해 UCI 월드컵 우승자인 이탈리아의 파올로 베티니를 제치고 두 번째 레인보우 저지를 차지했습니다.

2010년

2000년대 초반, 사이클링은 큰 스캔들로 위기를 맞았고 많은 브랜드들이 후원을 철회했지만콜나고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콜나고는 CSF 팀을 이끌며 프로 팀과 선수들을 꾸준히 후원했고, 그 해 지로 디탈리아에서 마누엘 벨레티는 감동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2011년

콜나고는 프랑스 유러피언 팀을 후원하며 투르 드 프랑스 무대에 섰습니다. 팀의 에이스 토마 보클레르는 지로 델 트렌티노, 지로 델 메디테라네오, 파리–니스 등에서 우승을 거두며 상승세를 탔고, 투르 드 프랑스에서 노란 저지를 입고 10일간 선두를 지켰습니다.

2016년

스벤 니스와 라르스 붐의 전설을 잇는 차세대 스타, 21세의 우트 반 아르트는 2015–2016 시즌 콜나고 프레스티지를 타고 사이클로크로스 세계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후 그는 이 대회에서 두 차례 더 정상에 오르며 CX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습니다.

2017년

콜나고는 UAE 아부다비 팀과 함께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시즌 중 주후원사 에미리츠 항공과 함께 팀명을 'UAE 팀 에미리츠'로 변경했고, 그해 지로 디탈리아 에트나 산 정상에서 얀 폴란츠가 팀의 첫 월드투어 스테이지 우승을 차지하며 의미 있는 출발을 알렸습니다.

2017년

21세의 필리포 가나는 콜나고 K.One을 타고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선수권 트랙 추발 종목에서 우승하며 유럽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2016년 세계 챔피언이자 유럽 대회 은메달리스트였던 그는 결승에서 포르투갈의 이보 올리베이라를 제치며 새로운 전설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2020년

타데이 포가차는 콜나고 V3Rs를 타고 투르 드 프랑스에서 우승하며 에디먹스 이후 콜나고 자전거로 대회를 제패한 두 번째 선수가 되었습니다. 승리에 대한 집념으로 무장한 이 젊은 슬로베니아 선수는 콜나고가 추구하는 가치를 완벽하게 보여주는 새로운 전설이 되었습니다.